1940년 4월에 윈체스터로부터 탄약 개발이 완성되자
상술된 조건을 만족하는 참여 기종들의 성능을 비교하는 1차 테스트를 실시했다. 이 과정에서 2개 업체가 탈락하고
오토 오드넌스, 새비지, 벤딕스, 콜트, 해링턴&리처드슨, 스프링필드 조병창,
우드헐 등 7개 업체만 남아 테스트를 받았다.
이 당시까지만 해도 스프링필드 조병창의 개런드 카빈이 가장 유력했었다.
개런드 카빈은 성능이 뛰어났으나
상부에서 급탄한다는 단점이 있어 하부 급탄 방식으로 개량했지만,
이 과정에서 중량이 무거워졌고 신뢰성이 감소되었다.

한편 윈체스터 사에서는 존 브라우닝의 이복동생인
조나단 에드먼드 브라우닝(Jonathan Edmund Browning, 통칭 에드 브라우닝)이
미 육군 제식 반자동소총 사업에 제출했다가 탈락한 콜트 M1929를
작동 방식을 반동 이용식에서 튜브형 가스 피스톤 방식으로 변경하는 등
재설계를 거친 G30을 개발했다.


에드 브라우닝 사후, 뒤를 이어 고용된
데이비드 마셜 윌리엄스(David Marshall Williams)가 G30의 설계안을 기반으로
기존의 튜브형 가스 피스톤을 쇼트 스트로크 가스 피스톤 방식으로 변경한
개량형 G30M을 개발하여 미 해병대 제식 반자동소총 사업에 제출했으나,
이물질 유입에 약한 데다 신뢰성이 떨어지는 단점으로 인해 개런드에 패배했다.

이후 M1 카빈이 제식화되자,
M1 카빈의 설계를 반영한 개량형인 G30R이 개발되었고,
이를 기반으로 한 자동소총형인 WAR(Winchester Automatic Rifle)이 개발되었으나
종전으로 인해 채택되지 못했다.
이후 노리쇠 작동 방식을 기존의 틸팅 볼트에서
개런드식 회전 노리쇠로 변경한 M2를 개발했다.

같은 해 9월에 시행된 2차 테스트에
탄약을 개발한 윈체스터 사도 참여 결정을 내리면서
이 개량형 M2를 기반으로 한 카빈 시제품을 제출했고,
15일 간의 심사를 거쳐 스프링필드 조병창, 터너 사, 라이징 사의 경쟁 기종들을
모두 제치고 M1 카빈의 제식명을 획득하였다.

뿐만 아니라 동년 12월 진주만 공습을 당하기 직전
미국 해군, 미국 해병대에서도 약 350,000정의 계약이 맺어지기도 했다.

뒤이은 1942년에는 공수부대의 요청을 받아
개머리판이 철제 접이식으로 바뀌어 휴대성이 높아진 M1A1과 함께
다양한 업체에서 대량 생산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1944년에는 자동발사 기능을 추가하려는 시도가 이어지면서
GM 산하의 인랜드 사의 프레드릭 샘슨(Fredrick Sampson)과
폴 해미쉬(Paul Hamish)가 개발한 T17 자동발사 부품을 적용시킨 T4가
동년 10월에 M2 카빈,

야간투시경 부착형 M3 카빈의 제식명을 받아
일본 오키나와 전역에서 운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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