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9월 2일 종전 선언과 함께 생산이 곧바로 중단되었으며,
기존 M1, M1A1 분량들은 30발 탄창 호환, 자동발사 기능 등이 추가되는 등의
오버홀 과정을 거쳤는데,
1950년에 발발한 6.25 전쟁에서 분당 750발이라는
빠른 발사속도(현대전에서는 보통의 발사속도이지만)와 복잡한 부품으로 인한
신뢰성 부족을 경험하면서 제기된 신형 제식소총으로 개발된
M14 소총에게 대체되면서 대부분은 예비 물자로 전환되거나
폐기되는 수순을 밟았다.

하지만 1960년 초반에 개시된
민간인 사격술 사업(Civilian Marksmanshi Program)의 일환으로
약 250,000정이 민수용으로 풀리면서
다양한 업체에서의 복제품들이 쏟아지거나
영화 등에서 대거 등장하는 계기가 되었고
1970년에 이르기까지 미군에서의 공식 퇴역은 이루어지지 않고
베트남 전쟁은 물론,
그 이후의 미국 공군 경비대 등에서의 운용이 계속 이어지기도 했다.

이후 M1, M2, M3 카빈의 명칭과 위치는 후속 화기인 M4 카빈이 계승하고 있다.

총 자체가 당대의 기관단총보다 훨씬 가볍고
21세기가 된 지금도 M1 카빈보다 가벼운 기관단총은 몇 개 없다.
카빈이 약 2.5kg 남짓인데 반해
톰슨 기관단총과 M1 개런드는 그 두 배에 가까운 무게였고
H&K MP5보다도 수백 그램 정도 가벼우며,
기관단총 중에서 가벼운 축에 드는 H&K UMP와 무게가 비슷하다.
나무와 쇠로 만든 구시대적인 디자인에
총열 길이마저 지금 기준으로는 긴 편인 18인치나 되는데도
이렇게 가볍다는 건 특기할 만하다.
이렇게 가볍게 만들기 위해서 총열을 상당히 얇게 만들었다.
원래 용도대로 중근거리 반자동 사격할 때는 큰 문제가 없었지만
자동 사격이나 중장거리 사격에는 총열의 내열성이나 집탄성 면에서
불리하단 평을 받았다.

또 장탄수도 많으며 반자동 사격이 되고 고장도 매우 적었다.
원래 M1 카빈은 톰슨 기관단총의 역할을
일정부분 대체할 것을 목표로 했기에 개발 단계에서부터
자동 사격을 전제로 한 설계였다.
단지 미군이 왠지 모르게 굳이 반자동 사양으로 생산했다.
여튼 그 덕에 방아쇠를 빠르게 당기면 자동소총 못지 않은
빠른 발사 속도도 낼 수 있었고,
나중에 생산한 M2 카빈은 실제로 자동 사격이 가능해
비싼 톰슨 기관단총을 일부 대체하기도 하였다.
톰슨 기관단총이 구조를 최대한 간략화 한 결과
생산비가 225달러에서 45달러까지 떨어졌지만,
M2 카빈은 처음부터 생산비가 45달러였고,
톰슨보다 위력이 좋고 사거리도 더 길고 가벼웠다.
때문에 공수부대나 해병대, 일반 보병들에게도 인기가 높았다.
거기에다 제작비도 85달러나 드는 M1 개런드보다
40달러 더 저렴해서, 약 540만 정을 생산한 개런드보다
50만 정 더 많이 생산되었다.

처음에는 아예 착검 장치가 없어 카빈으로 총검술을 연습하는 일이 없었고,
한국 예비군용은 아예 착검 장치를 떼어버린 경우도 있었다.
물론 2차 대전 중 일선의 요구로 착검 장치가 추가되고
전용 총검인 M4가 지급되는데,
이 M4 총검의 디자인은 M16에 착검하던 M7 총검까지
거의 그대로 이어지고 이 디자인은 지금까지도
대인 전투용(인명 살상용)으론 매우 효과적이란 평을 받는다.
대신 지금보다 체구가 작은 2차 대전 당시 미군,
90년대 이전 한국 예비군에게는 딱 맞는 사이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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