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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가 되면서 미군은 기존에 있던 테스트 화기들을 통합하고, 
신형 화기의 폭을 좁히게 된다.
당시 가장 유력한 후보는 T20, T22 계열과 아직까지 명맥이 이어지던 T25였다. 
미군은 T20과 T22는 좀 더 고전적인 M1 개런드와 비슷한 쪽으로 개량했으며, 
최후에는 하나로 합쳐지게 했다. 
T25는 T37로 고전적인 개머리판 디자인으로 개량한 물건으로 이어졌다. 
대한민국에서 6.25 전쟁이 발발할 때까지도 
이 신형 제식소총은 완성되지 않았기에, 
미군은 6.25 전쟁 중 기존의 M1 개런드와 
1944년에 새로 도입했던 자동소총인 M2 카빈을 그대로 들고 가야 했다.


이렇게 미군은 2차 대전 당시 총기를 그대로 들고 
북한군 및 중공군과 맞섰다. 
특히 상술한 M2 카빈이 가장 많이 사용되었는데, 
새뮤얼 마샬 준장이 이끄는 조사팀이 일선 병사들의 의견을 취합해 본 결과 


"M2 카빈은 저지력이 너무 낮다, 
특히 겨울옷을 두껍게 입고 몰려오는 중공군들은 
.30 카빈탄으로 쓰러뜨릴 수가 없다"는 불만이 지배적이었다. 
중공군들은 카빈탄의 사격을 버티며 접근해 
수류탄을 던지기 때문에 미군의 피해가 크다는 것이었다. 
M2 카빈으로 중공군을 쓰러뜨릴 수 있는 거리는 
대개 50야드(45미터) 이내였으며, 
이 거리라면 대부분의 병사가 수류탄을 투척할 수 있는 거리이다.


물론 M2 카빈이 사용하는 .30 카빈(7.62×33mm) 탄약은 
M1918 BAR이나 M1 개런드가 사용하는 
.30-06 스프링필드(7.62×63mm) 탄보다는 저지력이 약하다. 
그러나 나중에 밝혀진 바로는 M2 카빈의 "약한 저지력"은 
사용하는 탄의 위력 문제가 아니었다. 
.30 카빈으로도 유효사거리 내에서 방한복을 입은 병사를 저지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였으며, 
저지력이 낮은 것처럼 보인 이유는 
명중하는 탄이 적었기 때문이었다. 


카빈이 워낙 가벼운데다(2kg이 좀 넘는다) 개머리판 각도가 
총구 축선과 일치하지 않다는 문제 때문에 
반동이 커서 총의 제어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격장에서 과녁을 맞히는 것도 아니고 
실전 상황에서 인해전술로 몰려오는 중공군에게 연사하는 중에는, 
이게 탄이 빗나가는 건지 아니면 탄을 맞고도 달려드는 건지 
구별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했을 것이다. 
게다가 군인에게 "왜 중공군을 못막아?"하고 물어보면, 
"저희가 적들을 맞히질 못해서 그렇습니다" 할 군인이 있겠는가? 
열이면 열 "총알이 약해서 그렇습니다" 할 것이다. 


더욱이 이 M2 카빈의 저지력 오해의 주 소지가 된 장진호 전투의 경우 
해당 전투지역이던 장진호 일대가 당시 영하 45도를 
밥 먹듯 기록하는 최악의 혹한지였다. 
때문에 병사들도 최악의 컨디션 속에서 싸워야 했으며 
일반적인 상황에서보다 명중탄이 줄어들었고, 
추운 기온으로 인해 화약 연소가 잘 되지 않아 
가스압이 떨어져 위력과 신뢰성이 매우 떨어졌다. 
거기다 적군이였던 중공군들도 단순히 징집된 병사가 아닌 
수년간의 전투경험이 있는 군대였음으로 
단순 제압사격으론 그들을 멈추게 하는 것 또한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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