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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책임자였던 새뮤얼 마셜 준장은 
현장에서 전투를 겪은 야전 지휘관이 아닌 
군사사 연구가로 당시 이런 실상을 몰랐고, 
미군 수뇌부에게 병사들의 변명대로 
"M1 카빈 계열은 탄이 너무 약합니다"라고 보고했다. 
그런데 이는 미군(특히 육군) 수뇌들의 구미에 맞는 보고였다. 
당시 미 육군 수뇌부에는 M1 개런드 빠들이 잔뜩 있었다. 


조지 S. 패튼 장군은 개런드를 
"가장 훌륭한 전쟁 도구"라고 칭찬했을 정도다. 
이 마초들은 실제 병사들의 고충을 모르는 
안전한 후방에서 지휘하는 입장만 생각하고 
"그것 봐, 카빈탄으론 안 된다니깐? 
미군이 쓰는 제식총은 역시 개런드처럼 화력이 세야 한다!"며, 
개런드의 화력의 연장선에 있는 소총과 신형 탄약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살제로 지난 10여년간 벌어진 전투들을 분석해, 
소구경 고속탄의 자동사격에서 나오는 
높은 효율에 대한 보고인 '히치맨 보고서'가 
1952년 미국에서도 보고되었음에도 말이다. 


이 결정은 특히 T65 탄약의 선정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결국 최종적으로 T65 탄약이 제식화된 후 
M2 탄두의 크기 때문에 넥이 약간 길어져 51mm 로 늘어난 
T65E3 탄약이 개발되었고, 
곧 NATO 표준 탄약(7.62×51mm NATO)으로 선정되며 
신형 소구경 탄약을 준비하고 있던 다른 NATO 회원국들
(특히 .280 브리티쉬 탄약을 준비하던 영국)에게 빅엿을 날리게 된다.


하지만 미군은 이 풀사이즈 탄약이 
자동사격에 취약함을 이미 인지하고 있었다. 
때문에 최종 개발은 초기 개발안과는 약간 다른 양상을 띠게 된다. 
처음에 미군이 만들려고 한 물건은 
M1 개런드와 M1918 BAR의 통합
(가벼운 일반 소총 + 무거운 자동소총)이 가능한 물건이었다. 
하지만 T65 탄약을 사용한 경량 소총으로는 
어떻게 해도 이 목적을 달성할 수 없었고, 
따라서 그냥 보급체계 일원화를 목적으로 
M1 역할의 일반 소총과 BAR 역할의 분대지원화기의 베이스를 
통합하려는 시도를 하게 된다. 


따라서 소총 버전과 경 기관총 버전을 함께 제작하기 시작한다. 
유력한 T20 계열과 T25 계열은 모두 40 번대의 T44와 T47로 통합되었다. 
미군은 최종 선정을 이 두 총과 외국의 유력한 소총으로 결정 하고자 한다. 
하지만 T44는 가스구조에 문제가 있어 개발이 조금 늦어지게 되었고, 


T47은 경량화로 인해 여전히 내구성에서 취약한 모습을 보여 
두 모델 모두 이렇다 할 장점이 없었다. 


앞서 언급한 경기관총 역할의 총은 T44E1 과 같은 
E 다음에 홀수가 붙는 모델들로, 
항상 원본이 되는 소총과 함께 개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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