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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찍한 초원에서의 전투에서는 우수한 기관총 덕분에 
독일군도 꿇릴 게 없었으나, 
보병전술의 기본이었던 제압과 우회타격에서 독일군이 매우 밀렸다. 
제압이야 사실 자동화기만 있으면 어느 정도 가능하기도 하고, 
애초에 MG42도 연사속도 문제로 인해 
경기관총으로는 그렇게 우수한 총도 아니었다. 
문제는 적의 화력조를 우회해서 타격하는 타격조인데, 
여기서 Kar98k보다 압도적인 개런드의 연사속도에 밀려버린 것. 


분대장의 눈에 들어올 우회타격로라는 게 
어차피 거기서 거기였기에 양군의 타격조가 마주칠 일이 매우 많았는데, 
기관단총조차 제대로 보급을 못해서 
볼트액션 소총과 기관단총 혹은 StG44 한 자루 내지 두 자루로 무장한 
독일군의 타격조는 톰슨 기관단총에 BAR, 브라우닝 30 구경은 물론이고 
일반 소총수조차 반자동인 개런드와 카빈을 들고 
대인저지력 높은 총알을 미친듯이 퍼부어대는 미군의 타격조 상대로는 
버틸 수가 없었다. 
독일도 자동화기의 중요성을 깨닫고 개인용 자동화기의 배치를 서둘렀지만 
그 시기쯤 되면 독일군의 문제는 반자동 소총이 아니라 
P-47 썬더볼트, 그리고 미군 보병을 어디라도 따라와주는 수많은 M4 셔먼이었다.


자유 프랑스군 역시 2차대전 중 개런드 소총을 지원받아 대량으로 이용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국의 우방 국가들에 
제식 소총으로 배치된 전적이 있었다. 
대표적으로 대한민국과 베트남 공화국, 중화민국, 일본, 서독이 그랬는데, 
한국의 6.25 전쟁을 겪으면서 한국군과 자위대를 
미군과 같은 보급체계 및 훈련체계로 맞추기 위해 도입된 것이 그 시초였다. 
결국 일본은 나중에 미군이 M14로 갈아타자 
그걸 재빨리 따라해서 64식 소총을 만들어 사용하면서 
M1 개런드는 자위대의 손을 떠나게 된다. 
서독군은 빠른 재무장을 위해 미군의 무기를 제공받았고, 
M1 개런드는 FN FAL이 G1이란 이름으로 채용되기 전까지 
서독군의 제식 화기로 사용되었다.
6.25전쟁 몇몇사진에서 인민군 1개 소대가 사용하고 있는 사진도 있다.


그러나 아직 총기 개발 인프라가 미미했던 한국은 
M1 개런드를 베트남전 초기까지 사용할 수밖에 없었고, 
훗날 베트남 전쟁을 거쳐서야 M16 소총이 도입되면서 
M16이 1970년대에 국내에서 면허생산되고 한국군에 대량 보급되자 
그제야 한국군의 제식 소총 자리에서 내려오게 된다.


이후 남은 M1 개런드 물량은 한동안 대한민국 예비군에 배치되어 있었고 
1960~80년대에도 사격 등 예비군 훈련은 물론, 
고등학교 교련에서도 제식훈련이나 분열식, 실총 분해 훈련은 
M1 개런드로 시행되었다. 
2000년대 전후에 모두 M1 카빈으로 대체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때 M1 개런드의 애칭이 일본식 발음인 에무왕.


5.18 민주화운동에서도 시민군에 의해 M1 카빈과 함께 사용되었으며 
계엄군도 저격용으로 소수 운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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