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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달카날 전투에서 후속 부대로 증원된 육군은 M1 개런드로 무장했는데, 
그 직후부터 '어째서인지' 육군 병사들 중 총을 잃어버린 경우가 늘어나고, 
여기에 인원 손실이 생겨 총이 조금이라도 남으면 
'어째서인지' 순식간에 사라졌고, 
'어째서인지' 해병대원들 중 상당수가 지급받지도 않은 개런드로 싸우고 있었다. 
그야말로 미 해병대의 '빌리기' 능력이 대단한 것. 
더 퍼시픽에서도 과달카날 전역 편(2회)에서 
해병대원들이 이렇게 육군의 M1 개런드를 '빌려가는' 모습이 묘사된다. 


육군 장병들이 보급품을 나르다가 공습 경보가 떨어져서 황급히 대피하자, 
그 틈에 해병대원들이 '빌려가는' 것. 
지휘관들은 일단 묵인했으나 전투 후반에 제1해병사단이 
호주로 철수하면서 수송선에 반입하는 것을 엄격히 규제했다. 
전투 중엔 화력 증가를 위해 필요했지만 
섬에서 나와 후방으로 철수하니 한동안 무기를 쓸 일이 없고 
개런드는 현지 해병에겐 아직 인가되지 않은 육군의 재산이었으며 
과달카날에 남은 육군과 다른 해병들에게도 
보충용 총기 밎 부속 수요가 있으니 행정적 정산을 하면서 
반납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에서는 M1 개런드의 형번인 'M1'에 관한 논란이 있어 잊혀졌지만, 
애초에 외국에서는 이 무기의 별명인 '개런드'를 
어찌 발음할 것인지가 더 큰 논란이다.


이 무기의 별명인 '개런드'의 유래는 전술되었듯 
개발자 '존 C. 거랜드'의 성인 '거랜드'인데, 
이 사람이 캐나다계 미국인이어서 그런지 '개런드'와 '거랜드'. 
이 두 가지 발음으로 양분되었다. 
실제적인 발음은 미국인이므로 미국을 기준으로 전술되었듯 '거랜드'이지만. 
한국에서는 일반적으로 '개런드'가 더 많이 쓰이므로 
사실상 '개런드'가 옳다고 거의 확정되어 있는 상황이다.


M1 개런드가 워낙 대량으로 만들어진 탓에 
개발자 존 C. 개런드가 자택에 스케이트장을 만들 만큼 
부유해졌다는 루머가 있으나, 
존 C. 개런드의 바이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내용이다. 
존 C. 개런드는 1936년에 M1 개런드 설계에 관한 모든 권리를 
로열티 프리로 정부에 넘겼기에, 
개런드로 돈 한 푼도 못벌었다고 한다. 
나름 미군의 승리를 견인한 개인화기의 개발자인데 
너무하다 싶었는지 미 의회에서 10만달러 포상금을 주자고 
안건을 내걸기도 했으나, 
그것마저도 통과하지 못했으며 그냥 공로 훈장 정도만 받았다. 
대신에 프로토타입을 미군에 공모한 이래 
스프링필드 조병창에 고용되어 은퇴할 때까지 
평생 직장으로 일하며 생계를 보장받았다.


애초에 존 C. 개런드는 발명 하나로 떠서 
돈 벌어 대저택을 사고 유명해지는 그런 미국적인 캐릭터가 아니었다. 
총기 개발 덕분에 미국에 귀화했을 뿐 
캐나다 출신에 모국어도 영어가 아닌 사람이고 
말수 적고 조용하게 기술 개발에 매진하는 엔지니어 성격이었던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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